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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김무성 부친 친일 논란 무엇이 문제인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부친 친일 논란이 일부 트위터에서 계속 맴돌고 있다.

 

 

그 트위터는 무엇때문에 그토록 김무성 대표의 부친친일 논란을 알리고 싶어하는것일까?

김무성 대표의 부친이 친일파 였고 김무성 대표는 친일파의 아들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싶은것 같은데. 그 이유야 나라를 애국하는 마음이라고는 하지만 정치적인 의도가 다분히 드러나 보이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일부에서 주장하는 김무성 대표의 부친인 김용주라는 인물이 정말 친일을 했는지 팩트를 체크해볼 필요가 있다.

 

 

 

김용주(金龍周.1905∼1985) 경남 함양 출생이다.

부산상고 나와서 일제시대 식산은행(殖産銀行)에 다녔다. 첫 발령지가 포항이었다. 포항에서 부친이 밤에는 야학(夜學)을 운영했다. 돈 없는 아이들을 모아 가르치는 것을 좋아하셨다. 야학을 운영하다가 이게 문제가 되어 일본사람들에게 식산은행에서 쫓겨났다.

 

은행 나와서 가게를 시작했다. 하필 이름도 ‘三一商會’로 지었다. 3·1운동을 염두에 둔 작명이었다. 일본 형사들이 계속 주시할 수밖에 없었다. 돈이 생기자 포항에 ‘영흥(永興)국민학교’를 선친이 세웠다.

 

 

▶ 출처 : 중앙일보 인터

http://jmagazine.joins.com/monthly/view/304308

 

 

 

김용주(金龍周, 1905년 7월 29일 ~ 1985년 1월 27일)는 대한민국기업인이자 정치인이다.[1]대한해운공사 사장과 주일공사관 공사를 지냈다. 1960년에는 민주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에 출마하여 당선되었으나 이듬해 5.16 군사정변으로 사퇴하였다.[2]차남 김무성새누리당의 대표이며 현대그룹 회장 현정은은 그의 외손녀이다.

 

출처 : 위키피디아

 

 

 

다른 정보를 찾아보면

 

 

 

김무성 의원 부친은 故해촌 김용주 선생이십니다.

 

해촌 김용주 선생은 1953년 주일공사로 재직 중이 었으며, 당시 맥아더 사량관을 직접 만나 서울과 경주를 폭격에서 제외해 달라고 간청하여 문화재를 보호한 일화가 있습니다.

지난 2012년 8월 24일 방영된 EBS 역사채널e "폭파위기의 덕수궁"을 보면 해촌 김용주 선생 관련 일화 소개됩니다.

 

 

 

출처] [새누리당 전대특집] 그것이 알고싶다, 김무성 부친은 친일파? 수난의 문화재 이를 지켜낸 인물 해촌 김용주|작성자 내일쉴꺼에요

 

 

 

 

 

 

 이런 상황을 보면 일부에서 친일파라고 하는 주장은 신빙성이 없어보이며 오히려 독립운동가라고 할만큼 국가를위한 애국심이 투철한것으로 보여 진다.

 

이미 몇년 전에도 일부 야권에서 잘못된 발언으로 민주당 대변인이 사과를 했던 일도 있었고 일부 매체가 반론 보도를 내기도 하였다.

 

이미 울궈먹을때로 물궈 먹어서 이제 냄비 바닥을 뚫을 정도인 김무성 대표 부친의 친일 논란을 가지고 어떻게 해보려는안타까움에 눈물이 나오려 한다.

 

지금 주로 이야기 하는것은

 

전쟁에 나간 ‘황군’에게 위문편지 보내는 운동을 폈다 하는것인데 

 

이것도 이미 유시민 전의원이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이야기 했었던 내용이다.

 

유시민의원은 “(김 의원) 아버지 김용주는 전남방직주식회사의 창업주로 일제강점기 경북도의회 의원, 조선임전보국단 간부로 전쟁에 나간 ‘황군’에게 위문편지 보내는 운동을 폈다고 알려져 있다”며 “일본인들이 두고 떠난 ‘적산’ 전남방직을 불하받아 부자가 되었다”고 김 의원이 친일파 아들임을 주장했다.

 

이처럼 부친에 대한 친일파 행적이 사실인 양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자 김 의원실에선 13가지 사실을 들어 조목조목 반박했다. 일단 김 의원은 유 전 장관이 주장한 경북도의회 도의원을 지낸 것과 관련해 “1935년부터 3선에 걸쳐 민선 경북도의회 도의원을 지낸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관선도 아니고 주민들의 손으로 뽑은 도의원을 지냈다는 것으로 ‘민족주의자’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라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김 의원은 조선인 출신 도의원 ▲조선총독부의 면화강제장장려정책 경북도의회 반대해 조선 농민지지(1935.3.1.) ▲경북지사 도로건설에 도민 자갈 부역 도의회 강력히 비판(1936.2.26.) ▲경북도의회 일본인 의원의 ‘조선인 차별 발언’에 항의와 공개사과 조치(1936.2.29.) 등을 들며 일제 정책에 반대해 조선인 편을 들었다고 반박했다.

또한 친일매체였던 매일신보 ‘황군에게 위문편지를 보내자는 제안’과 관련해 김 의원은 “김용주 선생이 조선임전보국단의 상임이사로 위촉지명된 것은 맞다”면서 “당시 조선임전보국단의 발기인을 보면 3·1운동의 33인 민족운동가였던 한용운, 오세창, 권동진, 정춘수 등 일제강점기 민족지도자들이 총망라된 것을 볼 때 상당수 인사가 강제로 가입되었고 간부로 지명되었다”고 설명했다.

 

 

 

친일파 아닌 13가지 이유 조목조목 반박

오히려 김 의원은 부친이 친일파가 아닌 애국자 라며 13가지 근거를 제시했다. 그 첫 번째가 1924년 포항청년회 지육부장을 맡아 독서회 등 노동야학을 개설해 일본경찰<에 검거 사실을 들었다.(동아일보 1925.5.9.) 이어 ▲1926년 10월 포항에서 3·1운동 정신을 이어받자며 지은 ‘삼일상회’ 설립(매일경제 1984.2.26.) ▲재산 절반을 기부해 영흥초등학교 설립(동아 1936.2.28.) ▲조선인학교 추가 확충 및 한국사 연구회 운영(1940.4.14.) ▲도의원 시절 조선인 교원 채용 및 조선상인회 설립(동아 1938.8.18.) ▲주부 대상 부인야학 개설 및 조선해운산업을 위한 ‘조선해운대책위’ 결성 ▲ 강제징발 한국어선 반환 외교활동으로 대한방송 ‘자유의 종’ 송출 등 갖종 근거자료와 함께 사실임을 강조했다.

이 밖에도 신한학술연구회 창립해 한국인 인재양성(1960.11.23.)후 맥아더 장군의 인천 상륙작전 당시 경주 문화재 폭격을 막기 위해 활동을 벌여 성과를 봤으며(EBS 역사채널E 2013.2.25.) 조선총독부가 1944년경 조선의 민족주의자 등 주요 인물 3000명 대학살 계획을 세웠는데 포항지역 거주인 명단 중 1호가 김용주 선생이었다고 주장했다.

 

 

 

▶ < 출처 : 김무성 의원 블로그>

 

 

 

이상처럼 지금 주장하는 내용들은 다소 억지스러운 면이 있으며 근거조차 부족하다. 만일 김무성 대표의 부친이 친일이라고 주장 하고 싶다면 좀더 확실하고 타당성 있는 근거를 제시하여야 할것이다.